영화 '플라워 킬링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의 음악과 별세한 음악감독 로비 로버트슨
이 글은 오세이지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플라워 킬링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과 2023년 8월 별세한 음악감독 로비 로버트슨에 대해 다룹니다.
2023년 10월 19일에 개봉한 영화 '플라워 킬링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은 오세이지 연쇄살인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신작이다. 오세이지 부족은 미국 중서부에 거주하던 원주민 부족으로 19세기 후반 자신들이 거주하던 캔자스 지역에서 쫓겨나 척박한 오클라호마에 자리 잡게 되며, 그 땅에서 석유가 쏟아지는 바람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된다. 그리고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백인들의 질투와 음모에 의해 오세이지 부족의 일원들은 한 명씩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1935년 FBI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도 관계가 있는 이 이야기는 2017년 논픽션 작가인 데이비드 그랜에 의해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판권을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 끝에 마틴 스코세이지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아래 글에서는 마틴 스코세이지가 감독한 이 영화가 특별히 기대되는 이유에 대해 다루었으며, 본 포스팅에서는 이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별세한 음악감독 로비 로버트슨에 대해 몇 마디 적어보고자 한다.
작고한 로비 로버트슨 음악감독의 유작
2023년 8월 9일, 록밴드 '더 밴드(The Band)'의 기타리스트이자 영화음악 감독, 작곡가인 로비 로버트슨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1943년생인 로비 로버트슨은 수많은 음악을 남기고 80세를 일기로 음악 팬과 영화 팬들의 곁을 떠났다. 로비 로버트슨이 작고할 당시 '플라워 킬링 문'은 완성되어 지난 5월 깐느 영화제에서 초연을 마친 상태였으며, 이로서 '플라워 킬링 문'은 로비 로버트슨의 마지막 영화작업으로 남게 되었다.
'플라워 킬링 문'은 로비 로버트슨의 마지막 작품일 뿐 아니라 로비 로버트슨이 남긴 최고의 작품으로도 회자될 가능성이 있다. LA 타임스는 작고한 로비 로버트슨에 대한 헌사와도 같은 2023년 8월 10일 자 기사에서 '플라워 킬링 문'에 대해 로비 로버트슨이 영화를 위해 작곡한 최고의 음악이라는 극찬을 하였다.
록밴드 '더 밴드(The Band)', 밥 딜런과의 작업
마틴 스코세이지와의 인연으로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발을 들이기 이전의 로비 로버트슨은 록밴드 '더 밴드(The Band)'의 기타리스트로 유명했다. 더 밴드는 캐나다인 4명과 미국인 1명으로 구성된 밴드로, 원래는 로커빌리 가수인 로니 호킨스의 세션 밴드로 모이게 되었지만 1964년 로니 호킨스를 떠나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더 호크스(The Hawk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더 밴드는 1965년 밥 딜런을 만나 밥 딜런과 함께 투어 하게 되는데, 이 시기는 밥 딜런이 어쿠스틱 포크 음악에서 일렉트릭 음악으로 전향하던 시기이다. 밥 딜런과 더 호크스는 함께 투어 하며 밥 딜런에게서 순수한 포크 음악을 기대하던 대중들의 야유를 받았다. 이러한 음악적인 전환은 밥 딜런의 음악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순간이다. 로비 로버트슨은 밥 딜런의 1966년 앨범인 'Blonde on Blonde'에도 기타리스트로 참여했으며, 밥 딜런은 1976년 열린 더 밴드의 고별공연에서 피날레를 장식하였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로비 로버트슨의 인연이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밥 딜런과의 인연은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며, 이에 밥 딜런은 로비 로버트슨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이후 로비 로버트슨을 '평생의 친구(lifelong friend)'라 부르며 추모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밥 딜런을 떠난 더 호크스는 이름을 더 밴드로 바꾸고 1968년에 데뷔 앨범인 'Music from Big Pink'를 발매한다. Big Pink는 당시 멤버들 중 일부가 소유하고 있던 뉴욕주의 집을 부르던 이름으로, 이 집에서 더 밴드와 밥 딜런의 많은 음악이 만들어졌다. 이 앨범은 이후 아메리카나(Americana) 장르와 로큰롤 음악의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음반으로 평가된다. 더 밴드는 1976년에 '라스트 왈츠(The Last Waltz)'라는 제목의 고별 콘서트를 열었으며, 이 콘서트는 마틴 스코세이지에 의해 동명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1978년에 개봉되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의 50년 인연
마틴 스코세이지와 로비 로버트슨의 인연의 시작이 '라스트 왈츠'였다고 언급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이 둘의 만남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코세이지와 로비 로버트슨을 소개한 것은 존 태플린(Jon Taplin)이라는 인물이다. 존 태플린은 학창 시절에 당시 밥 딜런, 재니스 조플린, 더 밴드 등 여러 뮤지션들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던 앨버트 그로스만 아래에서 일하였으며, 프린스턴 대학교 졸업 후 더 밴드의 투어 매니저로 일하였다. 당시 마틴 스코세이지가 우드스탁 다큐멘터리에 편집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한 것을 인연으로 존 태플린이 스코세이지의 '비열한 거리(Mean Streets)'를 제작하였고, 이 영화는 큰 호평을 받아 마틴 스코세이지라는 감독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존 태플린의 소개로 '비열한 거리'의 스크리닝에서 스코세이지와 로버트슨의 만남이 있은 후에 둘은 더 밴드의 고별공연을 다룬 음악 다큐멘터리를 구상하게 되며, 그 구상은 '라스트 왈츠'로 실체화된다. 두 사람의 인연이 '비열한 거리'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스코세이지가 로비 로버트슨과 서로 50년 동안 알고 지냈다고 말한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후 로버트슨은 스코세이지 영화의 크레디트에 작곡가로, 음악감독으로, 뮤직 수퍼바이저(영화에 쓰이는 기존 음악의 라이센싱을 총괄하는 사람)로 자주 이름을 올렸다. 로버트슨은 '코미디의 왕', '갱스 오브 뉴욕',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아이리쉬맨'등에 음악 프로듀서로, '셔터 아일랜드'에는 뮤직 수퍼바이저로 이름을 올렸다.
지미 키멜 라이브에 출연한 마틴 스코세이지의 인터뷰에서도 잠깐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스코세이지와 로버트슨의 협업은 일반적인 영화 음악 작업의 프로세스와는 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비 로버트슨의 매니저 자레드 르빈도 한 인터뷰에서 로버트슨과 스코세이지의 영화음악 작업 프로세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영화의 편집이 끝난 후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에서 음악 작업이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프로세스와는 달리, 마틴 스코세이지는 편집 이전에 음악을 원했으며 로비 로버트슨이 보내 준 음악에 맞춰 편집하곤 했다. 로비 로버트슨은 헤드라이너와의 인터뷰에서 '컬러 오브 머니'의 영화음악을 작업할 때 자신이 키보드를 치며 허밍으로 작곡하는 테이프를 마틴 스코세이지에게 보냈다가 그래도 영화 속에 사용되었던 일화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언급들로 미루어 볼 때 영화음악에 대한 로비 로버트슨과 스코세이지의 협업은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캐나다 원주민의 정체성과 보호구역에서의 어린 시절
로비 로버트슨에게 '플라워 킬링 문'의 음악작업이 의미 깊었을 이유는 또 한 가지 있다. 로버트슨의 어머니는 캐나다의 이리 호(Lake Erie) 주변의 식스 네이션스 보호구역 출신인 북미 원주민이었으며, 로버트슨은 어린 시절 인디언 보호구역과 토론토를 오가며 생활하곤 했다. 로버트슨은 별세하기 불과 얼마 전에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의 경험에 대해 밝혔는데, 인디언 보호구역 내에서 로버트슨의 친척들이 악기를 다지고 둘러앉아 한 사람이 리듬을 연주하기 시작하면 다른 한 사람이 멜로디를 노래로 부르기 시작했고, 그러한 음악적인 경험은 로비 로버트슨을 사로잡았으며 평생 동안 깊이 각인되었다고 한다.
'플라워 킬링 문'의 음악에는 이러한 로버트슨의 어린 시절 음악적 경험, 아메리카나 음악에 큰 발자취를 남긴 뮤지션으로서의 역사, 마틴 스코세이지와 로버트슨의 독특한 창의적 다이내믹 등이 녹아있다.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로버트슨은 페요테 찬송가와 다양한 북소리, 가죽 북을 문지르는 소리, 종소리와 래틀 소리 등 자신이 어린 시절 들었던 다양한 소리의 질감이 (영화음악 안에서) 하나의 울림으로 어우러지는 순간에는 어떤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 영원함과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언급으로부터 '플라워 킬링 문'의 음악에서 로버트슨이 무엇을 추구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다. 로버트슨의 음악은 영화 속에서 성공적으로 기능하는 것으로 보인다. LA 타임스의 표현에 따르면 로버트슨의 음악은 오세이지 부족의 삶과 문화에 대한 스코세이지의 생생한 재현에 즉각적으로 진정성을 더한다.
앞선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플라워 킬링 문'은 할리우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서사를 다룬 작품이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엇갈리는 평이 존재할 수 있지만, 이 영화가 로비 로버트슨의 중요한 음악적 유산으로 남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참고문헌
https://headlinermagazine.net/robbie-robertson-the-irishman-score-martin-scorsese.html
https://www.cbc.ca/music/robbie-robertson-film-scores-martin-scorsese-1.6932531
https://www.nme.com/reviews/film-reviews/killers-of-the-flower-moon-review-martin-scorsese-3448518
https://www.nytimes.com/2023/08/09/arts/music/robbie-robertson-dead.html
https://www.billboard.com/music/rock/bob-dylan-robbie-robertson-dead-statement-1235390535/
https://youtu.be/9mx2i-4Mi7c?si=0xNbUvx5UB-89VwG
https://en.wikipedia.org/wiki/Robbie_Robertson